나쁜남자를 만난건지, 내가 나쁜남자를 만든건지.. 연애


 약 한 달 전 헤어졌던 사람과는 8개월간 연애를 했다. 사귀고 반년까지는 너무 좋았던 것 같다.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숱한 소개팅을 했었지만 첫눈에 잘생겼다! 내 이상형이다! 싶은 사람은 처음이었다. 캡모자가 잘 어울리는 모나지 않은 얼굴형에, 눈매가 또렷하고 올림머리나 적당히 긴 머리 모두 잘 어울렸으며, 어깨가 넓고 뼈대가 굵직하고 키도 적당해서 - 생각보다 별로인 몸매인데도 불구하고 - 옷발이 잘 받았다. 애정표현 끝내주고, 애교도 많고, 내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생각해뒀다가 이것저것 다 사다주고, 연락도 엄청 많이 해주고, 매일 나를 보고싶어했고, 내가 샤워하고 나올 때를 기다려 방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나를 놀래킬 줄 아는 귀여운 면모도 있었고, 편지도 자주 써줬고, 내 방 곳곳에 메모도 많이 남겨주었으며, 꽃선물도 한달에 한번씩 해줬으며, 분위기도 잡을 줄 알고, 취미도 너무 잘 맞았고, 내게 요리를 해 준 첫 남친이었고, 그의 부모님께 여자친구를 소개하고싶다고 처음으로 밝혔다고 했고, 내 친구들을 만나서 점수를 따고싶어했고, 본인의 친구들도 다 소개해줬으며, 우리 부모님 생신과 동생 생일, 명절선물도 챙겼다. 데이트 하는 날마다 사진을 한 장씩 남기자고 제안하여 사진 찍히는걸 싫어하는 나를 변하게 만들었고, 나로 인해서 본인이 생각했던 미래를 좀 더 올곧은 방향으로 바꾸겠다고도 했다. 그냥 여러모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했었다. 그리고 난 너무 행복해서 소원을 적는 종이에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까지 썼다.(난생 처음으로 이 사람이랑 결혼하고싶다! 라고 느꼈던 것 같다.)


 초반에 그도 내게 너무 빠져있어서 본인 친구들을 만나지 않아 몰랐었는데 연애 7개월 차에 접어들어 그의 본모습이 드러날때 쯤, 그가 노는 걸 엄청 좋아하고 심지어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. 그리고 그는 6시반에 기상해야하는 직장인이었는데 백수인 친구들 따라서 새벽 3시 넘어서까지 놀기 일쑤였다. 일찍 들어가야 1시고, 5시까지 논 적도 많고 외박도 꽤 했다. 당연히 일할 때 졸리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, 결국엔 나와의 주말 데이트에도 조금씩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. 물론 그 친구들이 직장을 갖게 되면 상황이 달라질 거라는걸 기대는 했지만, 그는 나보다 4살 연하였기에 그 시기를 기다리는건 내게는 너무 혹독하게 느껴지는 너무 먼 훗날의 얘기였다. 그러던 중에 그가 내게 신뢰를 잃는 행동을 하게 되어 우리 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. 의심이 들기 시작한 나는 집착을 하게 됐고, 그의 귀가시간으로 싸움이 잦아졌다. 그렇게 우리는 이별에 가까워졌던 것 같다.


 처음 나를 바라봤을 때 초롱초롱했던 눈빛이 사라졌고, 우리가 옆으로 나란히 앉아있을 때 나로 향해있던 그의 몸은 이제 내가 아닌 앞을 향해있었고, 같이 우산을 쓰면 자연스레 내 어깨에 올리던 손이 더이상 올라오지 않았고, 커플데이트를 하면 그는 나보다 상대커플에 관심이 더 많았다. 그 상대커플은 우리 커플을 부러워했었는데 어느순간 내가 그 커플을 부러워하고 있었다. 초반엔 일주일에 4,5번을 만났던 것 같은데 그 횟수도 반으로 줄었다. 연락은 크게 티가 나게 줄지는 않았지만 잠들기 전 통화 시간은 확실히 줄었던 것 같다. 그러던 어느 날, 그가 갑자기 카톡 프사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. 그래서 후보 사진 몇 장 보내주면 내가 골라주겠다고 해서 골라주었더니 카톡 프사만 바꾼게 아니라 내 사진으로 되어있던 카톡 배경사진도 바꿔버렸다. 갑자기 느낌이 이상했다. 나는 담아두지 못하는 성격이라 바로 따져물었고, 그 사진 내리면 헤어지는거니까 다시 올리라고 억지를 부렸다. 그는 싫은 눈치였지만 내가 으름장을 놓으니 마지못해서 다시 내 사진을 배경사진으로 등록했다... 그리고 그 다음 날 우리는 만나서 데이트를 했다. 여느때와 다름 없이 데이트 후 우리 집에서 같이 잠들었고 낌새가 이상했던 나는 잠자리가 뒤숭숭해 뒤척이다 깼고 그의 핸드폰을 뒤졌다. 아니나 다를까... 카톡 프사를 내 사진으로 해놓네 마네했던 그 날, 그가 핸드폰에 소개팅 어플을 깔았던 흔적을 발견하고야 말았다. 참 허탈했다.. 달달하고 행복했던 이 연애의 끝이 이런거라니 ㅎㅎㅎㅎ 어이가 없어서 쓴 웃음이 자꾸 나왔다. 그를 흔들어 깨웠다. 화도 크게 안 났다. 이미 한 번 실망했던 터라 올 것이 왔구나싶기도 했다.. 그는 단순 호기심이었고, 한 번 해보고 지웠으며(탈퇴도 아니고;;), 카톡에 내 사진이 떡하니 있는데 어찌 그런 걸로 여자를 만나겠냐고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. 일단 난 그를 많이 사랑했기에 알겠다고 했고 각자 일을 하러갔다. 


 그 날 밤. 나는 연애하면서 처음으로 잠수를 타봤다. 네이버에 '남자친구 소개팅어플'이라고 검색하고, 나같은 여자들이 어떻게 극복하고 처신했는지 글을 보면서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. 부재중 전화가 몇십통이 찍혀있었고 그의 카톡으로 내 핸드폰이 도배되어있었다. 연애 초반에는 우리집을 자기집 드나들듯이 했던 사람이, 내가 잠수를 탄 이유를 알았을텐데도 전화만 열심히 해대고 우리 집에는 찾아오지 않는게 우스웠다.. 그러고 그 다음 날 아침에 그에게 잠시 연락을 했다가 난 다시 또 잠수를 탔다. 어제는 연락 할 기분이 아니었다고.. 우리 이제 헤어졌으니까 그만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.. 그 건 내 이성이 시킨 말이기는 했지만, 내 마음은 그가 내게 빌고 나를 잡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. 하지만 내 입에선 너무나도 이성적인 말만 튀어나왔고, 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난 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. 그렇게 그는 나를 이틀동안 전화로만 붙잡다가 삼일째 되던 날 우리집에 찾아왔고 우리 집에서 자기 짐을 챙겨갔다. 그렇게 우리는 끝이 났다...




 내가 지금 힘든 게.. 당연한거겠지?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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